[PODo]Ep.1 신입(?) 에디터의 입사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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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o: Pebs Original Documents

펩스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전하는 소식지입니다.

새로운 계절과 함께 발행됩니다.

 

D+215, 입사 과제를 제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펩스에 합류한 지 8개월 차가 된 신입(?) 에디터입니다.
제 입사일이 2025년 7월 18일 이고, 이 원고를 쓰는 지금은 2026년 2월 18일이니 오늘이 딱 만으로 7개월 되는 날이겠네요.
지금 읽고 계신 글은 조용히 잊히길 바랐던 제 입사 과제이자, 펩스의 이모저모를 알리는 계간지 발행의 시작이 될 PODo* 1호입니다.

*PODo: PEBS Original Documents의 약어로, 펩스에서 발행하는 계간 소식지 명입니다. 귀여움을 한방울 섞고 싶은 에디터의 사심을 담았습니다.


***


“PEBS 합류를 축하합니다! 입사 과제로 ‘구성원 인터뷰’를 준비했어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도 잠시, 첫 주간회의에서 예상치 못한 과제를 받았습니다.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사실 인터뷰 연습은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쭉 몸 담았던 제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인터뷰 할 대상이 이제 막 만난, 나무위키에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나오는 사람들이라는 걸 제외하면요. 


초면이면서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과의 인터뷰 주제는 뭘로 잡으면 좋을까?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뭐라도 엮어볼텐데. 어느정도 개인적이면서 공통적인 궤도 있어야 할테고. 인스타그램을 파헤쳐볼까? 너무 사생활 파묘인가? 관찰일지를 써볼까? 너무 음침한가? 첫인상 토크는 너무 오글거리는 것 같고··· 아 맞다,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로구나.


싱겁지만 ‘직무소개’를 주제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영상 프로덕션의 구조를 잘 모르는 저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명분을 만들어 진부함을 당위로 포장했죠.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정말 많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감독과 PD의 역할을 구분조차 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감독과 PD의 차이는 무엇이냐?


주호 그러니까 ‘쓰여 있는 것’을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할까를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게 연출 감독이에요. 꼭 자기가 쓴 각본이 아니어도 되죠. 촬영 감독은 연출 감독이 생각하는 어떤 무드와 뉘앙스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카메라와 조명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찍어야 효율적일까.  정해진 예산 안에서 원하는 결과물에 최대한 가깝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PD인거죠. 현실적으로 교통비가 얼마나 들고 촬영 시간이 얼마가 필요하니까 회차가 늘어나고 막 이런 거를 조율하는 거죠. 그밖에도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서 스태프들과 연락하고 이미지와 컨셉도 전달해 두고요. 그러니까 그게 총괄적으로 ‘제작진’의 역할이에요.


펩스가 지금의 역할 체제를 갖추게 된 건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에요. 이전엔 주호, 예찬, 형진, 상준 - 모두가 연출을 하고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했었는데, 2023년 연말 워크샵 때 논의를 통해 역할을 나눠서 일을 해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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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작업을 할 때 연출 감독의 비중이 클 수 밖에 없다.
연출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 PD의 역할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예찬 사실 이 PD라는 역할이 실무적으로 예산이나 커뮤니케이션과 일정만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국 또 내부적으로는 연출자와도 굉장히 긴밀하게 소통을 해야되는 입장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연출을 하고 있진 않지만 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이야기 하기도 하고. 적어도 펩스에서는 작업자의 마인드를 버리고 PD로서 임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다만, 연출 감독마다도 자기가 어디까지 열어두고 PD를 어떻게 필요로 하느냐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역할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우리 프로덕션은 조금 명쾌한 것 같아요. 우리의 목표 지점은 평화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니고 ‘좋은 결과물’이다. 근본적으로 ‘가장 좋은 걸 위해서 서로가 싸운다’라는 게 베이스에 깔려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생각하는 부분이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 논리적으로 맞다 싶으면 최대한 그걸 설득해 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 계속 아이디어를 짜고 작업물을 만들어 설득을 하고 있는 감독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연출자라는 직업은 굉장히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하고, 판단에 대한 근거를 말하고, 또 설득을 하고, 의견을 수용하고, 새롭게 생각하고···.


형진 솔직한 얘기로, 언젠가 한번은 클라이언트 피드백을 듣고 처음에는 이런 수정을 시키다니. 진짜 싫다···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피드백 방향대로 편집을 해보니까 내가 고민했던 부분이 풀리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런 경험들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결과물을 냈을 때 나만큼 집중을 해서 이 영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실 클라이언트구나. 정말 영상에 몰입해서 프레임 바이 프레임을 보고, 애정이 담긴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인데 안중요할 수가 없구나, 하는 것들을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고 피드백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잡게 됐어요. 수필집에서 읽었던 내용 같은데, 그분도 소설가로서 피드백을 받는게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피드백을 꼭 받는다고. 그러면서 되게 스스로의 치졸한 모습을 많이 본대요. 머리로는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만 나의 의도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데, 내 책을 어느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읽어주는 사람이 내 아내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항상 아내의 피드백을 듣고 적극 수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게 - 저랑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나의 작업물을 나만큼의 애정과 노력을 들여서 봐주는 사람들이 결국 클라이언트고, 동료들이라고 생각해서 꽤 오래 전부터 저는 피드백을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해요. 특히 저희가 만드는 영상은 각자의 목적이 있는 것들이다 보니까 여기서 내 자아를 실현시키려고 하지 않는거죠.


그러면 창작자의 자아 실현은 어디서 이루어질까?
클라이언트 잡을 하지만서도 창작자라면 개인의 작업에도 욕심이 있는 게 당연한 걸까? 궁금해졌다.


상준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거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다가 최근에 GPT랑 상담을 했어요. GPT한테 나에 대해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질문을 몇개 해달라고. 그런데 답하다 보니까 좀 윤곽이 잡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세가지는?” 이라고 했을 때, 저는 1) 예술 2) 공동체 3) 유머다. 그리고 “10년 후에 당신의 이상적인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 제가 생각하는 굉장히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재원과 시간과 이런 것들이 무관하다면 ‘사회적인 기여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먼저 갖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어요. 본질적으로 저라는 사람을 통해서 뭔가 한다고 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저의 제한적인 경험을 나누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사람들끼리 뭉칠 수 있게 하는 그런 허브가 되는 것이 좋겠다 - 이렇게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하루로 대입하면, 조금 이기적이긴 하지만 저는 만약에 일을 안해도 되면 일찍 일어날 것 같기는 하거든요. 7~8시 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운동하고, 나의 하루는 점심 이후에 시작. 4~5시간만 ‘업무’라고 부르는 것들(=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다시 나의 시간을 보내는 거죠.


저는 일상을 살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게 결국 특권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게, 그런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원으로 보내야 되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근데 그때는 온전히 ‘나’ 일 수만은 없는 거고 주어진 역할을 해내야 되는 시간이니까, ‘나’의 시간 > ‘역할’의 시간이길 바라는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 이런 사람들 보면 되게 루틴하지만 실제로 작업에 쓰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게 되게 효율적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코어 타임을 제외하면 다 인풋의 시간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 딱 그렇게 완전 극단적으로만 일하고 놀고 싶어요.


인풋 ··· 인풋이라 ···.


재형 저는 영상 관련된 것들을 인풋으로 제일 많이 소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고, 영상도 멋진 영화를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콘텐츠 형식의 가벼운 것들을 주로 보는 것 같은데, 광고나 뮤직비디오는 관심사라서 좀 더 의식적으로 찾아보려고 하긴 해요.


현지 인풋을 위해서 뭘 한다기 보다는 늘 고민에 빠져 있는 건 내가 (잘) 살고 있나 … 그런 걸 많이 생각해요. 소재도 막 발굴해서 쌓아두지 못해요. 그냥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됐을 때 글을 쓰는 편이고 이런건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오는 것 같아요. 겪었던 경험들과 고민들이 다 합쳐져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만들기 시작해요.


재형 지난 여름에 현지 님이랑 같이 출장을 좀 길게 떠나게 돼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그러다가 예술(가)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냐 - 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항상 생각하는 건: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없는지’가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는 제 스스로 느끼기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근데 저는 창작이랑 예술은 되게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가 창작은 하고 있지만 예술을 하고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영상 만드는 일은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서 직업적으로 잘 맞다고 느껴요. 저는 직업인이고, 직업인으로서 더 유능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현지 저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펩스에서 지원(*PEBS YARD: 구성원들의 개인 작업을 독려하고, 제작비를 지원하는 제도)도 해주셨고··· 제가 만드는 거에 대해서 신뢰도 해주시고··· 그리고 이 일 자체가 제가 하는 작업이랑 비슷한 분야이기도 하고··· 일은 일이지만 결국 저한테 오면 대충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열심히 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느낌이 좀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일은 제가 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여기, 그 경계가 아주 명확한 사람이 있다.
‘일’과 ‘나’의 온전한 분리를 이뤄낸 펩스의 ‘무라카미 일주키’다.


일주 저는 개인적으로 일을 해서 돈을 엄청 많이 벌고 싶고 그런 욕심도 없고 그냥 뭐든지 적당히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인경 그림은 언제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주 해야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서 꾸준히 하다보니까 자연스러워 진거죠. 그림이 저한테는 취미라면 취미도 되고요. 복싱도 취미예요. 원래는 한 2년 정도 체육관에 다녔어요.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친구들이랑 공간 대여해서 하는 편이고, 피아노도 쳐요.


인경 그림은 안 질려요?


일주 그림은 그냥 당연한 거라서 저한테는. 엄청 유명해지고 그런 걸 상상하는 것도 아니니까 사실 미래를 걱정하고 그런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인경 유명해 질지는 모르는 거죠. 근데 목표로 하지도 않는 것 같네요?


일주 저는 모두가 좋아하는 게 좋은 거라고 딱히 생각 안 하긴 해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거면 충분해요.


인경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스스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죠? 


일주 그렇죠. 삶은 원래 재미가 없고, 어쩔 수 없이 태어나서 재미를 찾아야만 살 수 있는 거예요. 


인경 그래도 행복하시죠?


일주 행복이 뭘까 - 하는 생각도 하면서. 저는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인경 그래요? 근데 삶에 되게 충실하세요.


일주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거죠. 삶은 고통인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살아야 되니까 무조건 긍정하고 사는 수밖에. 저도 하고 싶은 거 많아요. 근데 그냥 하면 됐던 것들이라 할 뿐.


“마음이 충만하시다. 그러니까 나 여기 지금 스님인 줄 알았어.”

녹취록에 있던 (많은 깨달음을 얻은 에디터의) 날 것 그대로의 감상을 끝으로 펩스 전 구성원 인터뷰를 마무리 한다.


***


반년이 넘게 묵혀둔 녹취록을 다시 읽고 엮으며, 자연스럽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그때의 동료들과 지금의 동료들을 겹쳐보았습니다. 이제는 점심 메뉴를 함께 고민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렇게 서로에 대해 열심히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새삼 소중한 기억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1:1 인터뷰를 끝낸 직후에는 모두와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 정말 막막했습니다. 하나의 글로 엮을 수 있는 명확한 주제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정리하고 보니, 이렇게 다르지만 또 어찌저찌 엮이는 모습이 ‘우리’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라는 돌이 굴러들어와 끝내 안착한 자리는 혼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자리내어줌’이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온 사람,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맞이한 조직 모두의 노력을 다시 새기며 PODo 1호를 마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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