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작업과 다큐 작업을 넘나드는
사진작가 하태민을 만났습니다.
두 권의 사진집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만의 작업 방식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 했습니다.
PPT
"저 사람 궁금하다. 연락해 볼까?"로 시작된 PPT(Pebs Ping-pong Talk)는 그저 토크가 하고 싶은 펩스의 새로운 게릴라 이벤트입니다.
꼭 같은 분야가 아니어도, 만나 보고 싶은 게스트가 생기면 자리를 마련하고 여러분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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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사진작가 하태민
스튜디오펩스는 현재 광고를 만들고 있지만 그 시작에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광고와 다큐멘터리라는 두 장르는 얼핏 보기에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두 작업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크리이에티브를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핵심이 맞닿아 있습니다.
광고주가 정해 놓은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삶과 사건 안에서, 두 장르는 모두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이 제한들이 더 신선한 아이디어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흑백요리사 시즌2를 재미있게 봤는데,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범위를 무한정으로 제공했던 미션이 가장 어려웠다던 셰프들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PPT에서는 펩스와 유사하게 상업 작업과 다큐 작업을 넘나드는 사진작가 하태민을 만났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장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에 낯설기도 합니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와 뉴스에서 매일 보는 사진, 혹은 아이돌 공출목* 사진도 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동시대의 사진작가는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업을 출판물로까지 이어가는 작가는 더더욱 드물죠.
*공출목: 공항, 출근길, 목격담의 줄인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작업 방식은 다큐멘터리 영상 감독들의 작업 방식과 어떻게 다르고, 또 비슷할까. 나아가 상업 작업과 개인 작업은 어떻게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까에 대해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하태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커리어의 시작과 시킴(Sikkim)

하태민 군대를 운이 좋게 사진병으로 갔는데 거기에 되게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선임들도 실제로 대학에서 사진 전공하다가 들어온 분도 계셨고. 제가 이등병 때 제 최고 선임이었던 분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사진집을 하나 사왔었는데, 그게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라는 작가의 책이었어요. “이런 게 사진집이야”라면서 보여주는데 저는 당시에 사진집은커녕 아트북 서적도 한 번 만져본 적 없었어요. 그 선임이 “너 첫 휴가 되면 서울에 이런 사진 서점이 있으니까 한번 가서 봐봐라” 해서 이제 휴가 때 사진 서점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가 뭔가 약간 이렇게(?) 됐던 그런 순간인 것 같은데, 이후 군대 2년 내내 되게 열정적으로 많이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군대를 전역할 시점이 와서 사진을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뭘 해야 될지도 몰랐고 사진 씬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기는 했지만 뭔가 ‘내 첫 작업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전역을 하게 됐습니다.
이주호(이하 PEBS) 전역하고 막막했을 수도 있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이런 것들이 배수의 진을 친 것 같달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하태민 네, 원래는 제가 계획을 한 작업이 있었어요. 그래서 말씀하신 배수의 진처럼 나는 이제 뭔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역하자마자 300만 원 정도 모아서 필름 사고 비행기표 사고 해서 이제 인도로 향하게 됐는데, 원래 가려 했던 지역이 되게 정치적으로 분쟁이 많은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제가 가기 3일 전에 그 지역에 유혈 사태도 날 정도로 역사적으로 큰 시위가 일어난 거예요. 근데 저는 그때 뒤가 없었어요. 난 이거 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갔는데, 마지막 환승지까지 갔을 때는 그 도시에 아예 접근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어서 좀 많이 절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PEBS 배수의 진 치고 왔는데!
하태민 이거 뭔가를 해야 되는데 이대로 한국에는 돌아갈 수 없었고 그래서 최대한 그냥 가까운 동네로 가서 상황을 보자 하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시킴이라는 동네에 가게 됐어요. 첫날 제가 잡았던 호스텔 현관에서 보이는 풍경에 어린 친구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놀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 동네가 ‘히말라야의 시작점’이라고 불리는 지역이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 모습이 제가 그 동네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재밌다 하고 그대로 카메라 챙겨서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게 이 작업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PEBS 사진들을 볼 때 느껴지는 건, ‘작가님이 이 친구들이랑 되게 친해지셨구나’인 것 같아요. 언어도 당연히 다르고 이 지역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지역도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친구들한테 처음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는지도 너무 궁금해요.
하태민 지금은 어느 정도 저만의 방법론적인 것들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되게 본능적으로 했어요. 작업을 다 하고 나중에 돌이켜 보니까 처음에는 사진을 많이 안 찍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냥 나 보드 같이 타도 되냐 하면서 보드 배우고. 한 친구네 엄마가 조그마한 식당을 하셨어서 거기에 다 같이 맨날 가서 밥 먹고 그랬어요. 거기서 또 친구들이 보드만 타는 건 아니었거든요. 동네 모든 애들이 모이는 장소 같은 느낌이어서 이것저것 하면서 며칠은 그냥 같이 놀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가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래도 인도 국내의 가족 단위 여행자들은 조금씩 왔다 갔다 하는 지역이었어요. 근데 그들한테도 보드 타는 모습들은 신기했었는지 사진 찍고 이러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래서 아이들은 사진 찍히는 것에 이미 익숙하긴 한데, 싫증을 조금 더 많이 느낀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애초에 그렇게 오래 머물 계획이 아니었고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는 나 일주일 정도 지낼 거야 하면서 보드 같이 타고 그랬는데 제가 아예 한 달까지 있게 되니까 그 친구 중에 한 명이 저는 다르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뭔가 이렇게 와서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여행자가 아니라는 거죠. 이 친구들 크루 이름이 ‘커넥트’였는데 나중에는 저를 커넥트 일원이라고 해주더라고요. 처음에 사진을 안 찍고 먼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들을 대한 게 통했다고 느껴지니까 그때의 경험들이 나중에 작업을 할 때도 엄청 많이 도움이 됐어요. 바로 다음 작업을 할 때도 그게 이어졌던 것 같아요. 이걸 반복하다 보니까 이제는 저의 방법론으로까지 굳어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PEBS 굉장히 일상적인 상황들을 계속 촬영하신 거잖아요. 저는 다큐를 찍을 때 우리가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언제 레코딩을 눌러야 되지? 언제는 그냥 같이 밥만 먹어야 되지?’ 이런 게 오래될수록 정말 헷갈리기 시작하고 어려운 부분이에요. 작가님도 본능적으로 어떨 때는 같이 식사만 하셨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보드만 타셨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계속 셔터를 누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순간들은 어떻게 구분하셨어요?
하태민 본능대로 찍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때는 35mm 필름을 많이 썼기 때문에 저한테 허락된 컷 수가 굉장히 많았어요. 중형은 한 롤에 10장인데 35mm는 36장이니까.
PEBS 그럼 거의 1천 컷이 넘네요. 45롤을 가져가셨으면.
하태민 그렇죠. 처음에 확 친해지고 난 이후의 순간부터는 걔네도 즐기기도 했어요. 보더들은 좀 자기 트릭 하는 거 찍어주고 이런 거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되게 많이, 계속,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PEBS 이 작업은 일단 본능적으로 많이 셔터를 누르신 다음에 돌아와서 합격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현상과 인화를 하시고, 그다음에 선별 작업이나 편집에 치중하신 프로세스였겠네요. 그게 저희가 영상 찍을 때랑 다른 점인 것 같아요. 영상은 눌러놓고 대화를 기록해야 하니까 ‘이거를 언제 끊어야 되지?’라는 게 되게 고민되거든요. 레코딩 끊었는데 중요한 말 하면 엄청 후회된단 말이에요. 사진은 확실히 함께 있다가 찰칵찰칵 찍는, 이런 스타일로 진행을 하셨던 거고.
하태민 (사진은) 장면, 장면이니까.
PEBS ‘시킴’이라는 도시의 아이들에 대한 맥락도 저한테 들려주신 얘기가 있었잖아요. 이 도시와 아이들의 어떤 레이어까지 사진에 담아야 될지 고민이 되셨겠더라는 생각이, 그 맥락을 알고 나니까 들었거든요.
하태민 그 부분은 제가 작업을 할 당시에 작업적인 요소로 이해를 한 건 아니었어요. 작업이 나오고 한 2023년도쯤에 나일론 차이나라는 매거진에서 이 작업을 심도 있게 다룬 기사가 하나 나왔어요. “시킴이라는 동네가 자살률도 엄청 높고 청소년 범죄율도 되게 높고 마약과 관련된 이슈들도 많은 동네인데 이곳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다”라면서 리서치도 많이 해준 기사였는데요. 2019년도에 저는 그런 맥락이나 사회적인 이슈와 사진들을 엮을 수 있는 능력치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2023년도에 그쪽에서 그렇게 기사를 써줬을 때 ‘내가 내놓은 작업이 이렇게도 발전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에 지금 시킴 작업을 했었더라면 어떤 작업이 나왔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이제 저렇게 사진을 찍지는 않겠지만 뭔가 그런 맥락들을 좀 연결했어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근데 아쉬움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차피 못 했을 거기 때문에 저 때로 다시 돌아가도.
PEBS 첫 작업이니까, ‘첫 작업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할 수 있었다’라는 생각들이 많이 들잖아요. 계속 본능이라고 얘기하셨지만 진짜 몰랐기 때문에 더 용감할 수 있는 어떤 작업이 첫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딱 그런 매력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사후적으로 계속해서 내가 뭘 했냐고 돌이켜 보면 어떤 순간들이 있어도 그 당시에는 진짜 본능적으로 내 손 가는 대로 셔터를 누르셨던 그런 작업이라고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하태민 2020년도 초에 돌아와서 처음에 바로 책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빨리 뭔가를 보여주고 싶고 나를 증명하고 싶고 이런 마음 때문에 매거진 같은 데도 돌려보고 여기저기 뿌려봤는데 한 군데도 답장을 못 받고 몇 달의 시간이 갔어요. 처음에 필름 스캔 이미지를 받아봤을 때는 ‘어, 이거 됐다’, ‘이 작업 충분히 통하겠다’라는 자기 믿음이 꽤 강했는데 점점 상황적인 것들이 허락을 안 해주고 연락을 못 받고 그러니까 의심이 들고 하다 보니 한 몇 달을 멈췄었어요. 그냥 되게 다운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인스타에 한 장 한 장씩 제가 사진을 올리기만 하고 다른 것들을 안 했었는데 여름쯤에 인스타 팔로워가 하루에 갑자기 2~300명이 오른 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뭐지 하고 보니까 아이디 매거진이라는 곳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이라는 기사를 냈는데 거기에 저를 포함시켜 준 거예요.
PEBS 아이디 매거진도 뿌리셨던 리스트 안에 있었던 거죠
하태민 뿌리기는 했었는데 답장은 못 받았었어요. 근데 그거를 이제 몇 달 뒤에 그쪽에서 그냥 기사로, 저한테는 말도 없이 이렇게 너무 고맙게.
PEBS 기사로 실을 거라는 말도 없이 그냥 팔로워로 보답하는.
하태민 그게 글로벌 기사다 보니까 저한테는 너무 많은 힘이 됐었던 것 같아요. ‘이거 진행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럴 거면 책으로 가자라는 생각에 바로 혼자 팍팍팍 계획해서 펀딩 올리고 12월에 출간했습니다.
PEBS 어쨌든 팔로우도 늘고 이제 이름도 약간씩 알려지기 시작하시면서 외부 작업도 하시게 됐던 거잖아요.
하태민 2020년도 12월에 이 책을 내고 나서 그다음 달인 2021년도 1월에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외주, ‘돈 받고 하는 촬영’을 첫 번째로 하게 됐어요. 그때 새소년이라는 팀에서 이 책을 보고 연락을 줬는데 그걸 시작으로 이제 상업의 세계에도 첫 발걸음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때는 제가 상업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 보니까 일을 하나 할 때마다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온전히 그래서 상업이나 매체 촬영들에만 집중했던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래도 어떻게 하나씩 끝내갔는데, 첫 해외 출장을 한 11월쯤에 파리로 갔어요. 사진 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열리는 ‘파리 포토 페어’라는 페어가 열렸는데 그때 출장 끝내고 며칠 더 남아서 경험했어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포토들, 좋아하던 출판사들, 갤러리들 다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동기 부여도 엄청 되고 그래서 이제 상업 잠깐 쉬고 다음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왔던 것 같아요.
PEBS 상업 활동을 하면서 개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새로 생겼던 건가요?
하태민 네 그렇죠. 아무래도 지금은 둘 다 이렇게 밸런스 있게 하는 게 되게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게 개인 작업만 할 수는 또 없고 그렇다고 이제 상업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이걸 뭔가 번갈아 하게 되면 서로한테 시너지가 다 되는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거에 대한 밸런스를 잘 못 맞췄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때 뭔가 상업 작업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서 개인 작업을 다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PEBS 그런 설렘이 또 있잖아요. 처음으로 ‘누군가 나한테 돈을 주고 사진을 맡기네’라는 설렘. 근데, 짧죠.
하태민 말씀하신 의미에서는 새소년 작업 때 많이 설렜던 것 같아요. 근데 첫해에는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어요. 또 한 1년쯤 지나서는 ‘돈 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라는 생각이 분리가 잘 되기 시작했었던 것 같고, 실제로 상업에 있어서 모든 프로세스나 결과물도 되게 좋아졌던 것 같은데 그 포인트가 저한테 있어서는 ‘상업 포토로서의 자아’가 이제 확실히 분리됐다는 걸 느꼈던 시기인 것 같아요.
두번째 작업, 수(süü)

PEBS 그게 애매하게 엮이면 사실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기가 되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거든요. 저도 영화를 한 편 했지만 두 번째 영화를 계속 못 하고 있는 게 그게 애매하게 엮여 있어서라는 생각이 가끔 드는데, 상업과 개인 작업이 분리되는 순간 나에게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어떤 룸이 심리적으로도 더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첫 작업을 하고 두 번째 작업을 하는 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첫 번째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무식하고 잘 모르고 본능이 따라가는 대로 할 수 있었다면 이제 한 번 해봤고, 어디서 반응이 오고 이런 것들에 대한 약간씩의 힌트들이 생기잖아요. 두 번째 작업으로 가는 발걸음을 어떻게 떼셨는지 그런 점에서 궁금해요.
하태민 한국에서 유학하는 몽골 친구를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됐었어요. 근데 제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까 그 친구가 들려준 유목민 얘기를 듣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됐어요.
근데 그렇다고 막 사진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때는 한 장 한 장에 좀 더 강한 이미지를 찍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매거진에 올라갈 만한 그런 작업. 그런 거를 하고 싶어서 갔었는데 거기서 한 3주 정도 봄을 그 가족들이랑 같이 보내니까 그냥 이 가족들이랑 계절을 한 번 더 보내고 싶다. 이런 생각에서 두 번째 방문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PEBS 이제 내가 본능으로만 할 수는 없는 위치가 됐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뭔가 훨씬 더 많은 플랜을 가지고 가셨던 건 아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태민 그렇죠. 근데 애초에 두 번째 작업으로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그게 됐던 것 같아요.
PEBS 오히려 더 치밀하게 계산해서 어떤 구상을 하지 않고 일단은 가는 스타일이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도 그렇고 항공권을 굉장히 잘 지르시네요.
하태민 계획하면 좀 안 되는 타입인 것 같아요.
PEBS 이게 우스갯 소리가 아니고 일단 저지르고 가서 뭐라도 하다 보면 나온다라는 게 작업할 때 진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 작업의 발걸음을 뗄 때는 특히나 두려워서 못 하면 영원히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일단은 항공권을 지르시는, 굉장히 작업자로서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역시나 궁금한 건 그들의 반응, 그리고 갔을 때 뭘 보셨는지. 그러니까 거기서 어떤 가능성이라든가 단초를 처음 가셨을 때 느끼셨는지.
하태민 일단은 시킴에서 배운 저의 방법,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좀 일을 많이 도왔던 것 같아요. 같이 동물을 옮긴다든지 먹이고 청소해 주고 그런 것들을 많이 했던 것 같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을 하셨는지 되게 그냥 …
PEBS “사진이나 찍어라.” 이렇게 됐나요, 혹시?
하태민 사진도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많이 안 쓰셨던 것 같아요. 제가 많이 안 찍기도 했고 정말 하루에 다섯 장 이렇게 찍은 날도 있고 초반에는 그렇게 시간을 보던 것 같습니다. 시킴하고 비슷하게 최대한 사람 대 사람 이렇게 접근했었던 것 같아요.
PEBS 시킴은 한마을 안에서 굉장히 포인트가 되는 어떤 장면에서 시작하신 거잖아요. "이 마을에 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있네"라고. 그런데 수는 그냥 말 타는 사람을 찍으러 가자 이런 것도 아니고 어떤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어떻게 발전해 가셨는지 궁금해요. 너무 많은 장면이 있을 거잖아요.
하태민 제가 전체 방문은 총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총 4회를 몽골을 왔다 갔다 했는데요. 첫 방문 때는 명확한 어떤 지점 없이 그냥 저 개인적인 기준으로 여기 찍어야겠다고 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물론 컷수 자체는 시킴 때와 비교해서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첫 번째 방문 때 제일 많이 찍었던 것 같고 그리고 가장 랜덤한 이미지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종 책에 들어간 사진 중에 첫 번째 방문 때 찍은 사진이 가장 압도적으로 적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는 좀 더 플랜을 가지고 갔어요. 왜냐하면 첫 번째 이미지들에는 몽골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어요.
PEBS 우리가 몽골이라고 했을 때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하태민 뭔가 동물, 평원, 대자연 그리고 몽골 전통 옷들 약간 이런 부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돌아와서 필름들을 봤을 때 이 가족한테 집중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두 번째 방문을 했어요. 좀 더 이 가족한테 집중하고 좀 더 모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그 모호함이 그 가족에 대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 문화적인 것에 대한, 그러니까 몽골이 너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그냥 어느 나라의 가족이어도 상관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아이들의 행동이 너무 좋은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첫 번째는 어른들을 되게 많이 찍었었는데 두 번째는 점점 더 아이들 쪽으로 시선이 더 많이 갔던 것 같고, 두 번째까지 방문을 끝내고 나서 사진들을 봤을 때 이거 책으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사진들을 혼자 모아서 ‘더미’라고 하죠. 그런 데모 PDF를 만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해외 출판사들한테 쫙 한 번 돌렸었는데 시킴 때와는 다르게 답장들이 꽤 왔었어요. 그중 두 군데에서는 “바로 내고 싶다”라는 답변을 받았는데 저도 사실 큰 아쉬움은 없던 작업이기 때문에 그러면 바로 낼까 하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책을 낸 이 Chose Commune이라는 출판사에서 마지막에 저한테 연락을 주면서 하는 말이 “너무 좋은 사진도 많고 되게 강력한 사진도 있고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아직 책으로 내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충분히 더 포텐셜이 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 피드백을 원한다면 몇 번 더 가.” 이러더라고요.
PEBS 네가 원한다면?
하태민 네가 원한다면. 되게 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메일이었던 것 같아요.
PEBS 지금 책을 내면 후련한데.
하태민 지금 내면 후련한데. 그리고 (다른 출판사들도) 너무 좋은 출판사들이니까. 근데 Chose Commune은 저한테 있어서 정말 1순위의 출판사였거든요. 그래서 지금 다른 출판사와 책을 내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것이냐 아니면 Chose Commune이랑 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들의 피드백을 믿고, 이게 더 할 만한 가치의 작업이라는 것을 믿고 내가 더 나아갈 것이냐는 고민을 엄청 많이 했죠.
PEBS 사진을 더 찍어 오면 출판해 준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태민 그렇죠. 결국에는 후자를 따르게 됐어요. 뭔가 그 메일이 저한테는 가장 진실된 피드백 같기도 했고. 그래서 2023년도에 한 번 그리고 2024년도에 한 번 더 이렇게 해서 총 4번의 방문을 거치게 됐습니다.
PEBS 그 피드백을 받고 무려 두 번을 더 가신 거네요. 출판이라는 결심을 하시게 된 부분도 저는 궁금해요. 내가 사진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출판을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은 아니지 않나요? 전시가 될 수도 있고. 출판이라는 걸 꽤 초기부터 염두에 두고 하신 작업 같은 같이 들려서 그런 이유도 있을지 궁금하네요.
하태민 로버트 프랭크라는 포토도 그런 말을 했거든요. 포토들은 자기가 보기에 딱 두 부류로 나눠진다. 자기 포맷을 전시로 생각하는 포토와 책으로 생각하는 포토. 이런 말을 했었는데 저도 압도적으로 후자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이러다가 전시를 하는 포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항상 저의 최종 결과물은 책으로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책으로 낸다는 건 그냥 한 장 한 장 사진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를 해 드리자면 책에 들어가는 총 이미지 수가 굉장히 적어요. 총 38장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실 더 많은 이미지를 보기를 기대하고 책을 구매하기 때문에 책을 열었는데 아니 사진 이거밖에 없는데 이 가격이야 이럴 수도 있는 거고. 근데 그 사진의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책 하나로써의 경험을 해 보게 되는 거는 또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출판사의 디렉션에는 시와 관련된 것도 있었고 그 재질이나 아니면 어떻게 종이를 선택하는지, 그리고 사진의 순서 시퀀싱에 대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냥 강력한 사진 한 장 이렇게 딱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뭔가가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책에 끌리는 것 같아요.
PEBS 동의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진이라는 것을 책으로 소장하면 결국 더 오래 보게 되잖아요. 한 장 한 장 다시 꺼내볼 수 있고 그게 요즘 저는 더 체감되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너무 많은 사진들이 있고 아무리 내 나름의 질감을 준다 한들 그게 실물로 봤을 때의 질감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니까. 그때 Chose Commune의 구체적인 피드백 내용도 기억나세요? 어떻게 더 찍어 오라 하는 조금 구체적인 더 디렉션이 있었나요?
하태민 전혀 없었고요. 왜냐하면 우리랑 내자는 보장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PEBS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그쪽도 조금 어려웠을 수 있겠네요.
하태민 그래서 저는 이 작업을 어떻게 더 명확한 디렉션으로 발전을 시켜야 될까라는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첫 번째, 두 번째 갔던 사진들 전부 짧게 뽑아서 깔아놓고 혼자 들었던 생각은 두 번째 방문 때 들었던 생각, 조금 더 몽골적인 걸 안 보여주고 모호하게. 이런 부분을 더 확실하게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 같아요.
여기가 게르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게르에서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의 마을에 집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평일에는 거기서 아이들끼리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 부모님한테 돌아가서 일 같이 도와주고 이런 생활 패턴인데 세 번째부터는 게르에서는 거의 시간을 안 보냈던 것 같아요. 저만 아이들하고 평일에 그 집에서 같이 머물고 아이들하고 학교 같이 가고.
PEBS 약간 육아를 대신해 주시는?
하태민 걔네가 저를 육아해 주는. 밥도 해주고 막 그래서. 등교 같이하던 첫날에 학교 가니까 담임 선생님께서 놀라셨는데 거기는 인터넷이 잘 터지니까 번역기 해서 나 여기 있어도 되냐 해서 학교 교장 선생님 허가까지 받았어요. 학교에도 같이 머물고 낮에 학교 끝나면 집 돌아와서 또 시간 보내고 그러면서 디렉션을 점점 더 굳혀 갔던 것 같습니다.
PEBS 지금 들었던 스토리 자체가 몽골에 사진 찍으러 간다고 했을 때 생각하기 좀 힘든 프로세스로 확실히 느껴지네요. ‘몽골에 사진 찍으러 갔는데, 교장 선생님한테 허가받았어’라고 얘기하는 거는 쉽게 연결이 잘 안되거든요.
하태민 책을 쫙 보면 사실 몽골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그걸 없애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후반에 가서는 또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몽골적인 요소를) 없애는 것도 그거대로 부자연스럽다.
PEBS 밸런스를 잘 잡는 게 사실 어려운 거잖아요. 어떤 데는 정말 몽골이네 라는 게 보이면서 몽골이 아니어도 되는 감정도 담는 그 사이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몽골에는 계절을 매번 다르게 가셨던 건가요?
하태민 두 번의 겨울하고 봄, 여름이었는데 근데 수영할 만큼 더웠을 때는 몽골은 7월밖에 없어요. 세 번째까지 사진들을 찍고 마지막 네 번째는 나한테 지금 없는 컷이 뭘까라는 좀 치밀한 계획하에 갔어요. 첫 번째랑 완전히 상반되게 찍는다고 했을 때 물과 접점이 있는 사진들이 많이 없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물에 갈 수 있는 7월, 그때가 애들 방학이기도 했어서 그때를 마지막으로 정해서 갔습니다.
PEBS 다큐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런 부분들이 좀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그냥 무작정 누군가의 일상에 침투해서 찍었던 순간들도 물론 있지만 다큐라는 장르에서 우리가 플랜을 어떻게 짜고 작업을 대할 수 있는가 이렇게 계절을 집어서 선택하셨듯이. 그리고 세 번을 가셨으니까 거기에서 없는 건 뭘지 나름의 그 편집과 구상을 결국 하면서 가시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다큐라는 작업을 하면서도 연출을 어떻게 해야 되지 기획을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포인트로 이해를 하실 수 있는 부분들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사진이 되게 좋았어요.

하태민 이 사진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방금 말씀하신 얘기 중에 저는 이제는 완전 자연스러운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100% 자연스러운 다큐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 사진을 보시고 많이 주시는 피드백 중에 하나가 어떻게 이런 순간을 담으셨어요? 어떻게 이런 순간 포착을 하셨어요? 이런 부분들이에요. 처음 취미로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내 눈이 렌즈였으면 좋겠는 시기가 있었고 시킴도 그런 부분이 많았었는데 사실 지금의 사진들은 순간 포착인 사진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아요. 그 대상하고 저의 인터랙션이 더 중요한 사진들인데 예를 들어 대상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제가 그거에 흥미를 느끼면 그 순간을 바로 잡는 게 아니라 네가 했던 그 행동이 너무 좋다, 그거를 한 번 더 해줄 수 있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해볼까? 뭐 이런 식으로 발전하면서 촬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몽골에서 의사소통이 안 돼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근데 이 사진에서 재미있는 건 뭐냐면 제가 좀 친해지기 위해서 두 번째 방문할 때는 첫 번째 찍었던 사진들을 다 프린트를 해서 들고 가서 선물로 줬어요. 왜냐하면 필름이라서 바로 보여줄 수가 없었으니까. 당연히 너무 좋아하시고. 흥미로웠던 지점이 특히 아이들은 이제 본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인지를 하고, 어떤 순간에 제가 셔터를 누르는지를 스스로 파악하고 나서는 어느 순간부터 찍을 만한 장면들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사실 이 아이의 사진이 가장 많아요. 주인공 같은 친구인데 그냥 밥 먹고 나서 숲을 이렇게 걷고 있었어요. 근데 번개를 맞아서인지 뭔지 이렇게 꺾여 있는 나무인데 여기를 이렇게 자기 혼자 올라가더라고요. 그리고 저를 이렇게 뚫어지게 한참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딱 돌려주는 거예요. ‘자, 다 찍어라.’ 약간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그 순간이 아 지금 이 친구와 나 간에 이 사람들과 나 간에 인터랙션, 그러니까 사진가와 그 대상으로서의 인터랙션이 정말 강해졌구나라는 걸 느꼈던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PEBS 그런 게 결국 한 끗의 차이를 낳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여기에 갈 수 있고, 물론 모든 사람이 2주 만에 항공권을 끊는 결심을 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어떤 사진작가도 접근할 수 있고 찍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그 인터랙션에서 오는 거는 결국 나와 이 아이만의 관계에서 나오는 거니까 확실히 되게 좋은 포인트인 것 같아요. 사실 영상도 마찬가지거든요. 영상도 찍다 보면 편집 포인트를 출연자들이 다 알아요. 여기서 나한테 카메라를 돌리겠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그리고 출연자가 나를 찍고 있다는 거를 완전하게 잊었기 때문에 포착할 수 있는 순간도 있지만 이것처럼 이 인터랙션의 결과 또한 이 아이 스스로의 행동이니까 그거는 되게 유니크해지는 순간인 것 같아요.
결국 이 작업은 출판사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총 4년에 걸쳐서 찍으셨는데 최종적으로 선정된 게 38장이면 진짜 뼈를 깎는 아픔이지 않나요? 많은 사진들을 책에서 뺀다는 건.
하태민 네 번째까지 간 거를 다 모아서 출판사한테 메일을 쓰면서 나는 이제 됐다고 생각한다, 너희는 어때? 라고 했을 때 오케이의 답장이 와서 같이 책을 만들기로 한 이후에 그렇다면 우리 제작 과정은 2025년도 1월부터 들어가자고 합의를 했었는데 그러면서 합의한 몇 가지 포인트들이 있었어요. 몽골이지만 몽골 같지 않은 그런 모호함들, 그리고 너무 두껍지 않은 책을 만들자는 얘기를 제가 먼저 했었어요. 근데 사실 저의 기준은 한 60장 정도였던 것 같아요.
PEBS 거의 반타작이 됐군요.
하태민 근데 그들의 기준은 30장이었고. 그래서 거기서 밸런스를 맞춰 간 건데 처음에 30장이라는 얘기를 했을 때 너무 좀 슬펐고 한 장 한 장을 빼는데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본 것 같아요.
너무 아끼는 작업이다 보니까. 결국에는 몇 달 뒤에 조금 더 제가 객관적인 눈으로 작업을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이 셀렉션이 맞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이게 한 장 한 장으로서는 너무 강한 이미지여도, 어디 매거진 커버 될 것 같은 그런 너무 좋은 이미지여도 그게 이 책 포맷에 들어갔을 때 얘기는 또 다르기 때문에.
PEBS 너무 이해가 가는 것이 저도 다큐멘터리를 개인적으로 5년을 찍었어요. 5년을 찍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영상이 있을 거잖아요. 그 영화를 한 시간 반을 만들어야 하는데 보통 영화라는 게 편집본은 3시간 4시간 막 이렇게도 나오거든요. 그거를 깎아야 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죠. 하지만 결국은 ‘깎는 게 무조건 맞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라는 것도 감독이 있지만 편집 감독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 같고 그렇게 해서 계속 외부적인 시선으로 깎고 깎고 해서 조금씩 완성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거를 잘하기 때문에 그 출판사가 또 그렇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출판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는 어떤 내용인지요? 그것 역시 출판사의 개입이 좀 있었던 부분이겠죠?
하태민 네 시인은 총 2명이고요. 둘 다 몽골 시인이고 총 몽골어랑 출판사가 프랑스 출판사여서 프랑스어랑 영어로 번역이 돼서 총 6페이지에 시가 들어갔는데 한 분은 이제 프랑스로 이주를 하신 분이고 한 분은 몽골에서 사시는 분인데 몽골을 그리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내용의 시에요. 일단 저는 외부자의 관점에서 사진을 찍었고 사진의 대상인 분들은 한 번도 외국을 가본 적이 없는 완전 몽골 로컬 입장인데 뭔가 또 다른 레이어가 더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이게 책으로 받아봤을 때 시가 텍스트의 기능보다는 좀 더 하나의 이미지 기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 사진 이외에 또 다른 비주얼적인 요소를 더해 준 것 같아요. (시가 인쇄된) 노란 종이들은 또 재질이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좋은 결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끝으로, 두 권의 사진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밴드 실리카겔을 담은 사진집과 다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눴습니다.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전에 수많은 리서치가 필요하고 현장에 가서도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와 출연자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집요하게 추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태민 작가는 구상한 이미지의 상을 중심으로 툭툭 찍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또 곰곰이 돌이켜 보니 대상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이미지만으로 소통해야 하는 작업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을 장면을 중심으로 한 작업과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 작업의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출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미지와 내러티브는 서로 대척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소셜 미디어의 파도 속에서도 여전히 더 긴 호흡의 창작물들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PPT
"저 사람 궁금하다. 연락해 볼까?"로 시작된 PPT(Pebs Ping-pong Talk)는 그저 토크가 하고 싶은 펩스의 새로운 게릴라 이벤트입니다.
꼭 같은 분야가 아니어도, 만나 보고 싶은 게스트가 생기면 자리를 마련하고 여러분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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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사진작가 하태민
스튜디오펩스는 현재 광고를 만들고 있지만 그 시작에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광고와 다큐멘터리라는 두 장르는 얼핏 보기에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두 작업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크리이에티브를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핵심이 맞닿아 있습니다.
광고주가 정해 놓은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삶과 사건 안에서, 두 장르는 모두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이 제한들이 더 신선한 아이디어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흑백요리사 시즌2를 재미있게 봤는데,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범위를 무한정으로 제공했던 미션이 가장 어려웠다던 셰프들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PPT에서는 펩스와 유사하게 상업 작업과 다큐 작업을 넘나드는 사진작가 하태민을 만났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장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에 낯설기도 합니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와 뉴스에서 매일 보는 사진, 혹은 아이돌 공출목* 사진도 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동시대의 사진작가는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업을 출판물로까지 이어가는 작가는 더더욱 드물죠.
*공출목: 공항, 출근길, 목격담의 줄인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작업 방식은 다큐멘터리 영상 감독들의 작업 방식과 어떻게 다르고, 또 비슷할까. 나아가 상업 작업과 개인 작업은 어떻게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까에 대해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하태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커리어의 시작과 시킴(Sikkim)
하태민 군대를 운이 좋게 사진병으로 갔는데 거기에 되게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선임들도 실제로 대학에서 사진 전공하다가 들어온 분도 계셨고. 제가 이등병 때 제 최고 선임이었던 분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사진집을 하나 사왔었는데, 그게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라는 작가의 책이었어요. “이런 게 사진집이야”라면서 보여주는데 저는 당시에 사진집은커녕 아트북 서적도 한 번 만져본 적 없었어요. 그 선임이 “너 첫 휴가 되면 서울에 이런 사진 서점이 있으니까 한번 가서 봐봐라” 해서 이제 휴가 때 사진 서점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가 뭔가 약간 이렇게(?) 됐던 그런 순간인 것 같은데, 이후 군대 2년 내내 되게 열정적으로 많이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군대를 전역할 시점이 와서 사진을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뭘 해야 될지도 몰랐고 사진 씬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기는 했지만 뭔가 ‘내 첫 작업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전역을 하게 됐습니다.
이주호(이하 PEBS) 전역하고 막막했을 수도 있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이런 것들이 배수의 진을 친 것 같달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하태민 네, 원래는 제가 계획을 한 작업이 있었어요. 그래서 말씀하신 배수의 진처럼 나는 이제 뭔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역하자마자 300만 원 정도 모아서 필름 사고 비행기표 사고 해서 이제 인도로 향하게 됐는데, 원래 가려 했던 지역이 되게 정치적으로 분쟁이 많은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제가 가기 3일 전에 그 지역에 유혈 사태도 날 정도로 역사적으로 큰 시위가 일어난 거예요. 근데 저는 그때 뒤가 없었어요. 난 이거 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갔는데, 마지막 환승지까지 갔을 때는 그 도시에 아예 접근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어서 좀 많이 절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PEBS 배수의 진 치고 왔는데!
하태민 이거 뭔가를 해야 되는데 이대로 한국에는 돌아갈 수 없었고 그래서 최대한 그냥 가까운 동네로 가서 상황을 보자 하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시킴이라는 동네에 가게 됐어요. 첫날 제가 잡았던 호스텔 현관에서 보이는 풍경에 어린 친구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놀고 있더라고요. 근데 그 동네가 ‘히말라야의 시작점’이라고 불리는 지역이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 모습이 제가 그 동네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재밌다 하고 그대로 카메라 챙겨서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게 이 작업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PEBS 사진들을 볼 때 느껴지는 건, ‘작가님이 이 친구들이랑 되게 친해지셨구나’인 것 같아요. 언어도 당연히 다르고 이 지역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지역도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친구들한테 처음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는지도 너무 궁금해요.
하태민 지금은 어느 정도 저만의 방법론적인 것들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되게 본능적으로 했어요. 작업을 다 하고 나중에 돌이켜 보니까 처음에는 사진을 많이 안 찍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냥 나 보드 같이 타도 되냐 하면서 보드 배우고. 한 친구네 엄마가 조그마한 식당을 하셨어서 거기에 다 같이 맨날 가서 밥 먹고 그랬어요. 거기서 또 친구들이 보드만 타는 건 아니었거든요. 동네 모든 애들이 모이는 장소 같은 느낌이어서 이것저것 하면서 며칠은 그냥 같이 놀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가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래도 인도 국내의 가족 단위 여행자들은 조금씩 왔다 갔다 하는 지역이었어요. 근데 그들한테도 보드 타는 모습들은 신기했었는지 사진 찍고 이러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래서 아이들은 사진 찍히는 것에 이미 익숙하긴 한데, 싫증을 조금 더 많이 느낀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애초에 그렇게 오래 머물 계획이 아니었고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는 나 일주일 정도 지낼 거야 하면서 보드 같이 타고 그랬는데 제가 아예 한 달까지 있게 되니까 그 친구 중에 한 명이 저는 다르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뭔가 이렇게 와서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여행자가 아니라는 거죠. 이 친구들 크루 이름이 ‘커넥트’였는데 나중에는 저를 커넥트 일원이라고 해주더라고요. 처음에 사진을 안 찍고 먼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들을 대한 게 통했다고 느껴지니까 그때의 경험들이 나중에 작업을 할 때도 엄청 많이 도움이 됐어요. 바로 다음 작업을 할 때도 그게 이어졌던 것 같아요. 이걸 반복하다 보니까 이제는 저의 방법론으로까지 굳어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PEBS 굉장히 일상적인 상황들을 계속 촬영하신 거잖아요. 저는 다큐를 찍을 때 우리가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언제 레코딩을 눌러야 되지? 언제는 그냥 같이 밥만 먹어야 되지?’ 이런 게 오래될수록 정말 헷갈리기 시작하고 어려운 부분이에요. 작가님도 본능적으로 어떨 때는 같이 식사만 하셨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보드만 타셨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계속 셔터를 누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순간들은 어떻게 구분하셨어요?
하태민 본능대로 찍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때는 35mm 필름을 많이 썼기 때문에 저한테 허락된 컷 수가 굉장히 많았어요. 중형은 한 롤에 10장인데 35mm는 36장이니까.
PEBS 그럼 거의 1천 컷이 넘네요. 45롤을 가져가셨으면.
하태민 그렇죠. 처음에 확 친해지고 난 이후의 순간부터는 걔네도 즐기기도 했어요. 보더들은 좀 자기 트릭 하는 거 찍어주고 이런 거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되게 많이, 계속,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PEBS 이 작업은 일단 본능적으로 많이 셔터를 누르신 다음에 돌아와서 합격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현상과 인화를 하시고, 그다음에 선별 작업이나 편집에 치중하신 프로세스였겠네요. 그게 저희가 영상 찍을 때랑 다른 점인 것 같아요. 영상은 눌러놓고 대화를 기록해야 하니까 ‘이거를 언제 끊어야 되지?’라는 게 되게 고민되거든요. 레코딩 끊었는데 중요한 말 하면 엄청 후회된단 말이에요. 사진은 확실히 함께 있다가 찰칵찰칵 찍는, 이런 스타일로 진행을 하셨던 거고.
하태민 (사진은) 장면, 장면이니까.
PEBS ‘시킴’이라는 도시의 아이들에 대한 맥락도 저한테 들려주신 얘기가 있었잖아요. 이 도시와 아이들의 어떤 레이어까지 사진에 담아야 될지 고민이 되셨겠더라는 생각이, 그 맥락을 알고 나니까 들었거든요.
하태민 그 부분은 제가 작업을 할 당시에 작업적인 요소로 이해를 한 건 아니었어요. 작업이 나오고 한 2023년도쯤에 나일론 차이나라는 매거진에서 이 작업을 심도 있게 다룬 기사가 하나 나왔어요. “시킴이라는 동네가 자살률도 엄청 높고 청소년 범죄율도 되게 높고 마약과 관련된 이슈들도 많은 동네인데 이곳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다”라면서 리서치도 많이 해준 기사였는데요. 2019년도에 저는 그런 맥락이나 사회적인 이슈와 사진들을 엮을 수 있는 능력치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2023년도에 그쪽에서 그렇게 기사를 써줬을 때 ‘내가 내놓은 작업이 이렇게도 발전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에 지금 시킴 작업을 했었더라면 어떤 작업이 나왔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이제 저렇게 사진을 찍지는 않겠지만 뭔가 그런 맥락들을 좀 연결했어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근데 아쉬움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차피 못 했을 거기 때문에 저 때로 다시 돌아가도.
PEBS 첫 작업이니까, ‘첫 작업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할 수 있었다’라는 생각들이 많이 들잖아요. 계속 본능이라고 얘기하셨지만 진짜 몰랐기 때문에 더 용감할 수 있는 어떤 작업이 첫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딱 그런 매력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사후적으로 계속해서 내가 뭘 했냐고 돌이켜 보면 어떤 순간들이 있어도 그 당시에는 진짜 본능적으로 내 손 가는 대로 셔터를 누르셨던 그런 작업이라고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하태민 2020년도 초에 돌아와서 처음에 바로 책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빨리 뭔가를 보여주고 싶고 나를 증명하고 싶고 이런 마음 때문에 매거진 같은 데도 돌려보고 여기저기 뿌려봤는데 한 군데도 답장을 못 받고 몇 달의 시간이 갔어요. 처음에 필름 스캔 이미지를 받아봤을 때는 ‘어, 이거 됐다’, ‘이 작업 충분히 통하겠다’라는 자기 믿음이 꽤 강했는데 점점 상황적인 것들이 허락을 안 해주고 연락을 못 받고 그러니까 의심이 들고 하다 보니 한 몇 달을 멈췄었어요. 그냥 되게 다운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인스타에 한 장 한 장씩 제가 사진을 올리기만 하고 다른 것들을 안 했었는데 여름쯤에 인스타 팔로워가 하루에 갑자기 2~300명이 오른 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뭐지 하고 보니까 아이디 매거진이라는 곳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이라는 기사를 냈는데 거기에 저를 포함시켜 준 거예요.
PEBS 아이디 매거진도 뿌리셨던 리스트 안에 있었던 거죠
하태민 뿌리기는 했었는데 답장은 못 받았었어요. 근데 그거를 이제 몇 달 뒤에 그쪽에서 그냥 기사로, 저한테는 말도 없이 이렇게 너무 고맙게.
PEBS 기사로 실을 거라는 말도 없이 그냥 팔로워로 보답하는.
하태민 그게 글로벌 기사다 보니까 저한테는 너무 많은 힘이 됐었던 것 같아요. ‘이거 진행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럴 거면 책으로 가자라는 생각에 바로 혼자 팍팍팍 계획해서 펀딩 올리고 12월에 출간했습니다.
PEBS 어쨌든 팔로우도 늘고 이제 이름도 약간씩 알려지기 시작하시면서 외부 작업도 하시게 됐던 거잖아요.
하태민 2020년도 12월에 이 책을 내고 나서 그다음 달인 2021년도 1월에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외주, ‘돈 받고 하는 촬영’을 첫 번째로 하게 됐어요. 그때 새소년이라는 팀에서 이 책을 보고 연락을 줬는데 그걸 시작으로 이제 상업의 세계에도 첫 발걸음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때는 제가 상업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 보니까 일을 하나 할 때마다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온전히 그래서 상업이나 매체 촬영들에만 집중했던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래도 어떻게 하나씩 끝내갔는데, 첫 해외 출장을 한 11월쯤에 파리로 갔어요. 사진 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열리는 ‘파리 포토 페어’라는 페어가 열렸는데 그때 출장 끝내고 며칠 더 남아서 경험했어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포토들, 좋아하던 출판사들, 갤러리들 다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동기 부여도 엄청 되고 그래서 이제 상업 잠깐 쉬고 다음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왔던 것 같아요.
PEBS 상업 활동을 하면서 개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새로 생겼던 건가요?
하태민 네 그렇죠. 아무래도 지금은 둘 다 이렇게 밸런스 있게 하는 게 되게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게 개인 작업만 할 수는 또 없고 그렇다고 이제 상업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이걸 뭔가 번갈아 하게 되면 서로한테 시너지가 다 되는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거에 대한 밸런스를 잘 못 맞췄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때 뭔가 상업 작업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서 개인 작업을 다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PEBS 그런 설렘이 또 있잖아요. 처음으로 ‘누군가 나한테 돈을 주고 사진을 맡기네’라는 설렘. 근데, 짧죠.
하태민 말씀하신 의미에서는 새소년 작업 때 많이 설렜던 것 같아요. 근데 첫해에는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어요. 또 한 1년쯤 지나서는 ‘돈 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라는 생각이 분리가 잘 되기 시작했었던 것 같고, 실제로 상업에 있어서 모든 프로세스나 결과물도 되게 좋아졌던 것 같은데 그 포인트가 저한테 있어서는 ‘상업 포토로서의 자아’가 이제 확실히 분리됐다는 걸 느꼈던 시기인 것 같아요.
두번째 작업, 수(süü)
PEBS 그게 애매하게 엮이면 사실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기가 되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거든요. 저도 영화를 한 편 했지만 두 번째 영화를 계속 못 하고 있는 게 그게 애매하게 엮여 있어서라는 생각이 가끔 드는데, 상업과 개인 작업이 분리되는 순간 나에게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어떤 룸이 심리적으로도 더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첫 작업을 하고 두 번째 작업을 하는 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첫 번째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무식하고 잘 모르고 본능이 따라가는 대로 할 수 있었다면 이제 한 번 해봤고, 어디서 반응이 오고 이런 것들에 대한 약간씩의 힌트들이 생기잖아요. 두 번째 작업으로 가는 발걸음을 어떻게 떼셨는지 그런 점에서 궁금해요.
하태민 한국에서 유학하는 몽골 친구를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됐었어요. 근데 제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까 그 친구가 들려준 유목민 얘기를 듣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됐어요.
근데 그렇다고 막 사진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때는 한 장 한 장에 좀 더 강한 이미지를 찍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매거진에 올라갈 만한 그런 작업. 그런 거를 하고 싶어서 갔었는데 거기서 한 3주 정도 봄을 그 가족들이랑 같이 보내니까 그냥 이 가족들이랑 계절을 한 번 더 보내고 싶다. 이런 생각에서 두 번째 방문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PEBS 이제 내가 본능으로만 할 수는 없는 위치가 됐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뭔가 훨씬 더 많은 플랜을 가지고 가셨던 건 아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태민 그렇죠. 근데 애초에 두 번째 작업으로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그게 됐던 것 같아요.
PEBS 오히려 더 치밀하게 계산해서 어떤 구상을 하지 않고 일단은 가는 스타일이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도 그렇고 항공권을 굉장히 잘 지르시네요.
하태민 계획하면 좀 안 되는 타입인 것 같아요.
PEBS 이게 우스갯 소리가 아니고 일단 저지르고 가서 뭐라도 하다 보면 나온다라는 게 작업할 때 진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 작업의 발걸음을 뗄 때는 특히나 두려워서 못 하면 영원히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일단은 항공권을 지르시는, 굉장히 작업자로서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역시나 궁금한 건 그들의 반응, 그리고 갔을 때 뭘 보셨는지. 그러니까 거기서 어떤 가능성이라든가 단초를 처음 가셨을 때 느끼셨는지.
하태민 일단은 시킴에서 배운 저의 방법,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좀 일을 많이 도왔던 것 같아요. 같이 동물을 옮긴다든지 먹이고 청소해 주고 그런 것들을 많이 했던 것 같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을 하셨는지 되게 그냥 …
PEBS “사진이나 찍어라.” 이렇게 됐나요, 혹시?
하태민 사진도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많이 안 쓰셨던 것 같아요. 제가 많이 안 찍기도 했고 정말 하루에 다섯 장 이렇게 찍은 날도 있고 초반에는 그렇게 시간을 보던 것 같습니다. 시킴하고 비슷하게 최대한 사람 대 사람 이렇게 접근했었던 것 같아요.
PEBS 시킴은 한마을 안에서 굉장히 포인트가 되는 어떤 장면에서 시작하신 거잖아요. "이 마을에 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있네"라고. 그런데 수는 그냥 말 타는 사람을 찍으러 가자 이런 것도 아니고 어떤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어떻게 발전해 가셨는지 궁금해요. 너무 많은 장면이 있을 거잖아요.
하태민 제가 전체 방문은 총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총 4회를 몽골을 왔다 갔다 했는데요. 첫 방문 때는 명확한 어떤 지점 없이 그냥 저 개인적인 기준으로 여기 찍어야겠다고 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물론 컷수 자체는 시킴 때와 비교해서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첫 번째 방문 때 제일 많이 찍었던 것 같고 그리고 가장 랜덤한 이미지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종 책에 들어간 사진 중에 첫 번째 방문 때 찍은 사진이 가장 압도적으로 적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는 좀 더 플랜을 가지고 갔어요. 왜냐하면 첫 번째 이미지들에는 몽골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어요.
PEBS 우리가 몽골이라고 했을 때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하태민 뭔가 동물, 평원, 대자연 그리고 몽골 전통 옷들 약간 이런 부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돌아와서 필름들을 봤을 때 이 가족한테 집중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두 번째 방문을 했어요. 좀 더 이 가족한테 집중하고 좀 더 모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그 모호함이 그 가족에 대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 문화적인 것에 대한, 그러니까 몽골이 너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그냥 어느 나라의 가족이어도 상관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아이들의 행동이 너무 좋은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첫 번째는 어른들을 되게 많이 찍었었는데 두 번째는 점점 더 아이들 쪽으로 시선이 더 많이 갔던 것 같고, 두 번째까지 방문을 끝내고 나서 사진들을 봤을 때 이거 책으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사진들을 혼자 모아서 ‘더미’라고 하죠. 그런 데모 PDF를 만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해외 출판사들한테 쫙 한 번 돌렸었는데 시킴 때와는 다르게 답장들이 꽤 왔었어요. 그중 두 군데에서는 “바로 내고 싶다”라는 답변을 받았는데 저도 사실 큰 아쉬움은 없던 작업이기 때문에 그러면 바로 낼까 하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책을 낸 이 Chose Commune이라는 출판사에서 마지막에 저한테 연락을 주면서 하는 말이 “너무 좋은 사진도 많고 되게 강력한 사진도 있고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아직 책으로 내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충분히 더 포텐셜이 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 피드백을 원한다면 몇 번 더 가.” 이러더라고요.
PEBS 네가 원한다면?
하태민 네가 원한다면. 되게 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메일이었던 것 같아요.
PEBS 지금 책을 내면 후련한데.
하태민 지금 내면 후련한데. 그리고 (다른 출판사들도) 너무 좋은 출판사들이니까. 근데 Chose Commune은 저한테 있어서 정말 1순위의 출판사였거든요. 그래서 지금 다른 출판사와 책을 내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것이냐 아니면 Chose Commune이랑 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들의 피드백을 믿고, 이게 더 할 만한 가치의 작업이라는 것을 믿고 내가 더 나아갈 것이냐는 고민을 엄청 많이 했죠.
PEBS 사진을 더 찍어 오면 출판해 준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태민 그렇죠. 결국에는 후자를 따르게 됐어요. 뭔가 그 메일이 저한테는 가장 진실된 피드백 같기도 했고. 그래서 2023년도에 한 번 그리고 2024년도에 한 번 더 이렇게 해서 총 4번의 방문을 거치게 됐습니다.
PEBS 그 피드백을 받고 무려 두 번을 더 가신 거네요. 출판이라는 결심을 하시게 된 부분도 저는 궁금해요. 내가 사진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출판을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은 아니지 않나요? 전시가 될 수도 있고. 출판이라는 걸 꽤 초기부터 염두에 두고 하신 작업 같은 같이 들려서 그런 이유도 있을지 궁금하네요.
하태민 로버트 프랭크라는 포토도 그런 말을 했거든요. 포토들은 자기가 보기에 딱 두 부류로 나눠진다. 자기 포맷을 전시로 생각하는 포토와 책으로 생각하는 포토. 이런 말을 했었는데 저도 압도적으로 후자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이러다가 전시를 하는 포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항상 저의 최종 결과물은 책으로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책으로 낸다는 건 그냥 한 장 한 장 사진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를 해 드리자면 책에 들어가는 총 이미지 수가 굉장히 적어요. 총 38장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실 더 많은 이미지를 보기를 기대하고 책을 구매하기 때문에 책을 열었는데 아니 사진 이거밖에 없는데 이 가격이야 이럴 수도 있는 거고. 근데 그 사진의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책 하나로써의 경험을 해 보게 되는 거는 또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출판사의 디렉션에는 시와 관련된 것도 있었고 그 재질이나 아니면 어떻게 종이를 선택하는지, 그리고 사진의 순서 시퀀싱에 대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냥 강력한 사진 한 장 이렇게 딱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뭔가가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책에 끌리는 것 같아요.
PEBS 동의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진이라는 것을 책으로 소장하면 결국 더 오래 보게 되잖아요. 한 장 한 장 다시 꺼내볼 수 있고 그게 요즘 저는 더 체감되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너무 많은 사진들이 있고 아무리 내 나름의 질감을 준다 한들 그게 실물로 봤을 때의 질감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니까. 그때 Chose Commune의 구체적인 피드백 내용도 기억나세요? 어떻게 더 찍어 오라 하는 조금 구체적인 더 디렉션이 있었나요?
하태민 전혀 없었고요. 왜냐하면 우리랑 내자는 보장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PEBS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그쪽도 조금 어려웠을 수 있겠네요.
하태민 그래서 저는 이 작업을 어떻게 더 명확한 디렉션으로 발전을 시켜야 될까라는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첫 번째, 두 번째 갔던 사진들 전부 짧게 뽑아서 깔아놓고 혼자 들었던 생각은 두 번째 방문 때 들었던 생각, 조금 더 몽골적인 걸 안 보여주고 모호하게. 이런 부분을 더 확실하게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 같아요.
여기가 게르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게르에서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의 마을에 집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평일에는 거기서 아이들끼리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 부모님한테 돌아가서 일 같이 도와주고 이런 생활 패턴인데 세 번째부터는 게르에서는 거의 시간을 안 보냈던 것 같아요. 저만 아이들하고 평일에 그 집에서 같이 머물고 아이들하고 학교 같이 가고.
PEBS 약간 육아를 대신해 주시는?
하태민 걔네가 저를 육아해 주는. 밥도 해주고 막 그래서. 등교 같이하던 첫날에 학교 가니까 담임 선생님께서 놀라셨는데 거기는 인터넷이 잘 터지니까 번역기 해서 나 여기 있어도 되냐 해서 학교 교장 선생님 허가까지 받았어요. 학교에도 같이 머물고 낮에 학교 끝나면 집 돌아와서 또 시간 보내고 그러면서 디렉션을 점점 더 굳혀 갔던 것 같습니다.
PEBS 지금 들었던 스토리 자체가 몽골에 사진 찍으러 간다고 했을 때 생각하기 좀 힘든 프로세스로 확실히 느껴지네요. ‘몽골에 사진 찍으러 갔는데, 교장 선생님한테 허가받았어’라고 얘기하는 거는 쉽게 연결이 잘 안되거든요.
하태민 책을 쫙 보면 사실 몽골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그걸 없애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후반에 가서는 또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몽골적인 요소를) 없애는 것도 그거대로 부자연스럽다.
PEBS 밸런스를 잘 잡는 게 사실 어려운 거잖아요. 어떤 데는 정말 몽골이네 라는 게 보이면서 몽골이 아니어도 되는 감정도 담는 그 사이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몽골에는 계절을 매번 다르게 가셨던 건가요?
하태민 두 번의 겨울하고 봄, 여름이었는데 근데 수영할 만큼 더웠을 때는 몽골은 7월밖에 없어요. 세 번째까지 사진들을 찍고 마지막 네 번째는 나한테 지금 없는 컷이 뭘까라는 좀 치밀한 계획하에 갔어요. 첫 번째랑 완전히 상반되게 찍는다고 했을 때 물과 접점이 있는 사진들이 많이 없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물에 갈 수 있는 7월, 그때가 애들 방학이기도 했어서 그때를 마지막으로 정해서 갔습니다.
PEBS 다큐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런 부분들이 좀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그냥 무작정 누군가의 일상에 침투해서 찍었던 순간들도 물론 있지만 다큐라는 장르에서 우리가 플랜을 어떻게 짜고 작업을 대할 수 있는가 이렇게 계절을 집어서 선택하셨듯이. 그리고 세 번을 가셨으니까 거기에서 없는 건 뭘지 나름의 그 편집과 구상을 결국 하면서 가시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다큐라는 작업을 하면서도 연출을 어떻게 해야 되지 기획을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포인트로 이해를 하실 수 있는 부분들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사진이 되게 좋았어요.
하태민 이 사진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방금 말씀하신 얘기 중에 저는 이제는 완전 자연스러운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100% 자연스러운 다큐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 사진을 보시고 많이 주시는 피드백 중에 하나가 어떻게 이런 순간을 담으셨어요? 어떻게 이런 순간 포착을 하셨어요? 이런 부분들이에요. 처음 취미로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내 눈이 렌즈였으면 좋겠는 시기가 있었고 시킴도 그런 부분이 많았었는데 사실 지금의 사진들은 순간 포착인 사진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아요. 그 대상하고 저의 인터랙션이 더 중요한 사진들인데 예를 들어 대상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제가 그거에 흥미를 느끼면 그 순간을 바로 잡는 게 아니라 네가 했던 그 행동이 너무 좋다, 그거를 한 번 더 해줄 수 있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해볼까? 뭐 이런 식으로 발전하면서 촬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몽골에서 의사소통이 안 돼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근데 이 사진에서 재미있는 건 뭐냐면 제가 좀 친해지기 위해서 두 번째 방문할 때는 첫 번째 찍었던 사진들을 다 프린트를 해서 들고 가서 선물로 줬어요. 왜냐하면 필름이라서 바로 보여줄 수가 없었으니까. 당연히 너무 좋아하시고. 흥미로웠던 지점이 특히 아이들은 이제 본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인지를 하고, 어떤 순간에 제가 셔터를 누르는지를 스스로 파악하고 나서는 어느 순간부터 찍을 만한 장면들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사실 이 아이의 사진이 가장 많아요. 주인공 같은 친구인데 그냥 밥 먹고 나서 숲을 이렇게 걷고 있었어요. 근데 번개를 맞아서인지 뭔지 이렇게 꺾여 있는 나무인데 여기를 이렇게 자기 혼자 올라가더라고요. 그리고 저를 이렇게 뚫어지게 한참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딱 돌려주는 거예요. ‘자, 다 찍어라.’ 약간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그 순간이 아 지금 이 친구와 나 간에 이 사람들과 나 간에 인터랙션, 그러니까 사진가와 그 대상으로서의 인터랙션이 정말 강해졌구나라는 걸 느꼈던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PEBS 그런 게 결국 한 끗의 차이를 낳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여기에 갈 수 있고, 물론 모든 사람이 2주 만에 항공권을 끊는 결심을 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어떤 사진작가도 접근할 수 있고 찍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그 인터랙션에서 오는 거는 결국 나와 이 아이만의 관계에서 나오는 거니까 확실히 되게 좋은 포인트인 것 같아요. 사실 영상도 마찬가지거든요. 영상도 찍다 보면 편집 포인트를 출연자들이 다 알아요. 여기서 나한테 카메라를 돌리겠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그리고 출연자가 나를 찍고 있다는 거를 완전하게 잊었기 때문에 포착할 수 있는 순간도 있지만 이것처럼 이 인터랙션의 결과 또한 이 아이 스스로의 행동이니까 그거는 되게 유니크해지는 순간인 것 같아요.
결국 이 작업은 출판사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총 4년에 걸쳐서 찍으셨는데 최종적으로 선정된 게 38장이면 진짜 뼈를 깎는 아픔이지 않나요? 많은 사진들을 책에서 뺀다는 건.
하태민 네 번째까지 간 거를 다 모아서 출판사한테 메일을 쓰면서 나는 이제 됐다고 생각한다, 너희는 어때? 라고 했을 때 오케이의 답장이 와서 같이 책을 만들기로 한 이후에 그렇다면 우리 제작 과정은 2025년도 1월부터 들어가자고 합의를 했었는데 그러면서 합의한 몇 가지 포인트들이 있었어요. 몽골이지만 몽골 같지 않은 그런 모호함들, 그리고 너무 두껍지 않은 책을 만들자는 얘기를 제가 먼저 했었어요. 근데 사실 저의 기준은 한 60장 정도였던 것 같아요.
PEBS 거의 반타작이 됐군요.
하태민 근데 그들의 기준은 30장이었고. 그래서 거기서 밸런스를 맞춰 간 건데 처음에 30장이라는 얘기를 했을 때 너무 좀 슬펐고 한 장 한 장을 빼는데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본 것 같아요.
너무 아끼는 작업이다 보니까. 결국에는 몇 달 뒤에 조금 더 제가 객관적인 눈으로 작업을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이 셀렉션이 맞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이게 한 장 한 장으로서는 너무 강한 이미지여도, 어디 매거진 커버 될 것 같은 그런 너무 좋은 이미지여도 그게 이 책 포맷에 들어갔을 때 얘기는 또 다르기 때문에.
PEBS 너무 이해가 가는 것이 저도 다큐멘터리를 개인적으로 5년을 찍었어요. 5년을 찍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영상이 있을 거잖아요. 그 영화를 한 시간 반을 만들어야 하는데 보통 영화라는 게 편집본은 3시간 4시간 막 이렇게도 나오거든요. 그거를 깎아야 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죠. 하지만 결국은 ‘깎는 게 무조건 맞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라는 것도 감독이 있지만 편집 감독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 같고 그렇게 해서 계속 외부적인 시선으로 깎고 깎고 해서 조금씩 완성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거를 잘하기 때문에 그 출판사가 또 그렇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출판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는 어떤 내용인지요? 그것 역시 출판사의 개입이 좀 있었던 부분이겠죠?
하태민 네 시인은 총 2명이고요. 둘 다 몽골 시인이고 총 몽골어랑 출판사가 프랑스 출판사여서 프랑스어랑 영어로 번역이 돼서 총 6페이지에 시가 들어갔는데 한 분은 이제 프랑스로 이주를 하신 분이고 한 분은 몽골에서 사시는 분인데 몽골을 그리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내용의 시에요. 일단 저는 외부자의 관점에서 사진을 찍었고 사진의 대상인 분들은 한 번도 외국을 가본 적이 없는 완전 몽골 로컬 입장인데 뭔가 또 다른 레이어가 더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이게 책으로 받아봤을 때 시가 텍스트의 기능보다는 좀 더 하나의 이미지 기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 사진 이외에 또 다른 비주얼적인 요소를 더해 준 것 같아요. (시가 인쇄된) 노란 종이들은 또 재질이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좋은 결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끝으로, 두 권의 사진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밴드 실리카겔을 담은 사진집과 다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눴습니다.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전에 수많은 리서치가 필요하고 현장에 가서도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와 출연자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집요하게 추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태민 작가는 구상한 이미지의 상을 중심으로 툭툭 찍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또 곰곰이 돌이켜 보니 대상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이미지만으로 소통해야 하는 작업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을 장면을 중심으로 한 작업과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 작업의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출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미지와 내러티브는 서로 대척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소셜 미디어의 파도 속에서도 여전히 더 긴 호흡의 창작물들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